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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자 엘렌 지 화잇

Ⅱ. 엘렌 G. 화잇은 누구인가?" B. 예언자 : 계속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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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예언자 : 계속되는가?

1842년 혼혈아인 윌리암 엘리스 포이(William Ellis Foy)는 매사추세츠 주 보스턴에서 두어 주일에 걸쳐 두 차례 계시를 받았다.  처음 계시(1월 18일)는 2시간 30분 동안 계속되었고, 두 번째 계시(2월 4일)는 믿기 어려운 12시간 30분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계시 받을 때의 무아지경 같은 그의 신체적 상태는 다니엘서 10장에 나타나는 묘사와 유사성을 지녔다.  다니엘처럼 그는 계시 받는 동안에(특별히 단 1:17을 보라) 호흡이 중단되었다(그러나 그의 심장은 여전히 정상적인 기능을 계속하였다).

하여튼 윌리암 포이는 예언자 사역에 대한 그의 부르심을 활동적으로 수행하지 않았다.  1844년 여름에 하나님은 다른 사람 곧 헤이젠 포스(Hazen Foss)를 불렀다.  그러나 포스 역시 한 때는 동 계시에 순종하였으나 급기야는 그 사명을 불이행하였다.  그래서 1844년 12월 하나님께서는 “약한 자 중에 가장 약한 자”로 바꾸셨다.T. Housel Jemison, A Prophet Among You (Mountain View, Calif.: Pacific Press Pub. Ass., 1955). pp. 485-489과  Seventh-day Adventist Encyclopedia, revised edition (Washington, D.C.: Review and Herald Pub. Assn., 1976), pp. 473-475 참조.

이 이야기는 다음에 더 다루기로 한다.

“예언자”, 성경을 통하여 이 말에서 어떤 이미지를 즉각적으로 느끼는가?  거의 본능적으로 우리는 하나님을 옹호하며 홀로 서 있는 한 외로운 모습인 구약 성경의 엘리야 같은 모습을 상기할 것이다. 엘리야는 450명의 바알의 제사장들에게 도전 받았으며 하늘로부터 불이 내려오게 하였다.  그 불은 순식간에 그의 희생제물 뿐 아니라 제물을 지탱하는 제단의 돌과 제물을 흠뻑 적신 물까지도 살라버렸다(왕상 18장).

아니면 아마도 우리는 침례 요한의 준엄한 입술로부터 “주의 길을 예비하라”(마 3:3; 사 40:3 참조)고 빈들에서 외치는 소리에서 울려오는 메아리를 듣는다.  약대 털옷을 입은 요한은 자기 멋대로 사는 방종의 사람이 아니었다.  그의 음식은 주로 중동 지방에서 나는 아카시아의 일종 - 콩깍지(역자주- 성경에 나오는 메뚜기는 원래 캐롭나무 열매였음)와 사막으로부터 나오는 야생 꿀이었다(마 3:4, 막 1:16).

사실 우리는 성경에 대하여 생각할 때, 즉각적으로 성경 66권을 쓴 40여명의 기자들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일반적으로 그들을 “예언자” - “성령의 감동을 입은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벧후 1:21)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에녹이라고 불리는 사람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아담으로부터 7대 손인 에녹은 인간 역사에 최초로 기록된 예언자였다(유다 14장).  에녹으로부터 모세까지의 예언자들은 자기들의 메시지를 구두로 전파하였다.  모세는 예언자로서의 의사소통을 기록된 말씀으로 시작함으로써 역사적인 예언자직분의 분수령을 이루었다.

그 때부터 예언자의 문학적 흐름의 지류가 세분화되었다.  한 편으로는 예언자의 저술이 성경으로 보존된 기자들이고, 다른 한 편으로는 그들의 저술이 성경으로 보존되지 않는 예언자들이 있게 된 것이다.  후자에 속하여 저술들이 성경에 포함되지 않은 예언자(원래는 “선견자”로 불리어졌음) 들로는 야셀, 갓, 나단, 실로 사람 아비야, 스마야, 잇도, 예후 및 엘리야가 있으며 이들은 정경예언자들과 마찬가지로 영감받은 예언자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작품은 후세를 위하여 보존되지 않았다.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아니하시고”(행 10:34) - 혹은 성별에 차이를 두지 않으시고 - 남자와 마찬가지로 여자에게도 성서 시대동안 예언적 선물을 주셨다.  구약 성경에는 미리암(모세의 누이), 드보라, 그리고 훌다가 여예언자로 나온다.  신약성경도 안나와 빌립이라고 불리는 전도자의 네 딸들이 여예언자로 나온다.

오늘날 우리는 통상적으로 “예언자” 직무를 미래의 사건들을 예고하는 것으로만 연상하는데 성서시대의 예언자들의 영적 활동은 보다 더 광범위하였다.  즉, 예언자들은 다음과 같이 많은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1. 그들은 하나님을 위하여 말씀하였다.
 2. 그들은 하나님의 목적을 드러내었다.
 3. 그들은 통치자들을 강화시키고 또 그들을 지도하였다.
 4. 그들은 백성들에게 충성하도록 격려하였다.
 5. 그들은 악에 대항하여 싸웠다.
 6. 그들은 여러 활동들을 지시하였다.
 7. 그들은 교육자들이었다.
 8. 그들은 개인과 국가의 각 국면에 있어서 고문과 상담자로서 봉사하였다.
 9. 그들은 경고를 주었다.
10. 그들은 죄를 견책하였다.
11.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였다.
12. 그들은 때때로 기적들을 행하였다.
13. 그들은 설교하였다.

더 나아가 그들의 봉사는 히브리 국가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이방 국가들이 진리를 따르도록 어떤 예언자들을 활용하시기도 하였다.  성경시대 예언자들에 관하여는 별 문제없이 예언자성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신약 성서 시대 이후의 예언자의 등장이 가능하다는 논쟁에 대하여는 상당히 불편해 한다.  어쨌든 신, 구약성경의 증거는(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정경”(우리의 성경으로 만들어진 66권의 책)이 고정되었다고 해서 성령께서 인간 예언자들에게 영감주시는 일이 한 번도 중단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예수께서도 친히 세상 끝 날까지 그리스도교회 안에 성령의 임재를 약속하였다.  그분께서는 성령의 특수한 사역의 하나에는 하나님의 진리를 가르치시는 일이 들어있다고 말씀하셨다(요 14:15-17, 26을 보라).  곧 있을 재림의 징조와 관련하여 예수께서는 거짓 예언자들에 관하여 주의하도록 날카롭게 경계하셨다(마7:15; 24:11, 24).  만일 마지막 때에 참 예언자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면 예수께서는 단지 “예언자를 조심하라”고만 말씀하셨을 것이다.  “거짓”이라는 형용사가 함축하고 있는 뜻은 참된 예언자와 거짓 예언자가 모두 재림 전에 공존할 것임을 암시하신 것이다.

영적 은사에 관한 바울의 가르침에는 신약시대 이후에 예언자적 활동을 지지하는 가장 놀랄만한 증거들을 제공하고 있다.  그는 성령의 은사들 가운데 하나로서 예언의 은사를 분명히 언급하고 있다(엡4; 고전12; 롬12).  사실상 중요도의 순위로 볼 때 예언은 사도성 다음으로 두 번째의 중요성을 갖는다.  신약성경은 같은 사상을 표현하기 위하여 세 개의 용어를 상호교환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즉 이 세 용어들은 “예언의 은사”(고전 13:2), “예수의 증거” 즉 “대언의 영(예언의 신)”(계 19:10) 이다.  이 세 용어 모두가 거룩한 초자연적 계시와 이상의 은사를 언급하고 있다.  예언을 포함해서 성령의 이러한 은사들에 대하여 바울이 여러 가지로 언급한 내용은 다양한 봉사활동들이 종말의 시기까지 교회 안에 존재할 것이라는 사실을 명백히 하고 있다.  이 모든 은사들은 교회가 그리스도의 오심을 위해 준비될 때까지 그 기능이 계속될 것이다(엡 4:12-15).  바울은 예를 들어, 하나의 은사(즉 예언은사)는 사라지고, 반면에 나머지 은사들은 계속될 것이라는 어떠한 힌트도 주지 않았다.

바울의 서신들은 의심할 바 없이 신약 성경에서 첫 번째로 쓰여진 문서들이다.  그 중에 데살로니가전서는 이들 초기의 저작 서신들 중에 하나였다.  이 편지의 끝 부분에서 바울은 초기 그리스도교 신자에게 다음과 같이 권고하고 있다.  “성령을 소멸치 말라”, 그런 후 그는 자기의 충고에 따르는 방법으로 “예언을 멸시치 말라”고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것을 시험한 후에 “그때에 선한 것에 굳게 붙잡혀 있어야 한다”(살전 5:19-21)고 했다{사도 요한은 약간 다른 식으로 권고하고 있다.  즉 “영들을 시험하라” 왜? “모든 영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것은 아니며 많은 거짓 예언자가 세상으로 왔”(요일 4:11)기 때문이다}.

오늘날 어떤 그리스도인 무리에게 생기는 일이 초대교회에서도 거의 유사하게 있었다.  아마도 유대주의로부터 개종한 그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그들 사회에서 이렇게 이야기했을 것이다. “우리는 더 이상 예언적 저술들이 필요치 않다.  만약 구약이 예수님에게 충분했다면 그것은 나에게도 충분한 것이 된다.” 오늘날에도 어떤 기독교인은 이러한 잘못된 생각을 반복하고 있다.  사실상 그들은 성경이 정경화가 끝났기 때문에 성령의 일을 과거로 국한시키곤 하면서 우리는 오늘날 더 이상의 예언적 저술들이 필요치 않다고 주장한다.  바울이 예언적 주장들을 거부하기보다 시험하라고 말한 것은 이러한 그릇된 사상을 방지하기에 족하다고 본다.

그리스도께서 베들레헴의 아기로 초림하기 800년 전에 기록된 요엘서 2:28-32에서 이 고대의 예언자 요엘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기까지의 시간의 긴 통로를 내다보았다.  그러면서 그는 하나님께서 마지막 때에 예언의 은사를 특별히 부어주시므로 그 백성들을 영예롭게 할 것을 보았다.  남녀 노소를 막론하고 예언적 꿈과 이상을 경험할 것이었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이 요엘서 구절의 성취를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 50일 후인 오순절보다 뒤에 있을 사건으로 보는 것에 반대해 왔다.  그들이 제시하고 있는 근거는 사도행전 2:16-21에서 베드로가 오순절의 현상을 요엘서 2장의 성취로 지적한 점에 두고 있다.  이 오순절에 성취된 것은 요엘서 2장의 부분적인 성취에 불과하다는 견해로 다음의 중요한 이유를 들 수 있다.

첫째, 요엘서 2장의 예언 중에는 예언은사가 마지막 때에 이를 것에 대한 구체적 언급을 하고있다. 그렇지만 오순절의 영적 은사의 대부분은 방언(그리스도인이 개별적으로 전에 공부하지 않은 동시대의 언어를 기적적으로 말하는 것)의 은사가 확실하였다.  예언의 은사는 오순절에 그리 명확하지 않았다.

둘째, 요엘이 예언의 은사가 회복될 때(욜 2:19-20) 하늘(특히 해와 달)의 징조를 지적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이러한 하늘의 징조가 오순절의 사건현장에 수반되었다는 성경적 증거를 발견하지 못한다.

사도시대 끝에서 19세기 중반의 시기까지 그 사이에는 예언자가 없었는가?  폴 킹 즈윗트(Paul King Jewett)는 그리스도 교회 새 국제 사전(The New International Dictionary of the Christian Church)에 게제한 심도 깊은 논문에서 “후계자 없는 사도의 죽음과 더불어 예언의 은사를 가진 자들도 점차로 사라져서 3세기 이후로는 사도와 예언자, 교사의 삼인조 중 오직 교사만 남게 되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즈윗트는 또 부가해서 “히폴리투스(A.D 235)와 오리겐(A.D 250)의 시기까지 ‘예언’이란 말은 성경의 예언적 부분들에 국한되어 왔다”고 언급하고있다.Paul King Jewett, The New International Dictionary of the Christian Church, revised edition (Grand Rapids, Mich.: Zondervan Pub. House, 1978), pp. 806, 807.

그렇지만 성경은 예언의 은사가 사도시대와 더불어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다수의 카톨릭과 개신교인들이 주장해온 예언은사 폐기론이라는 가설은 그리스도교계 일각의 관심을 끌고는 있으나 성서적 근거가 박약하여 폐기처분감이 된지 오래된다.  동 가설의 근거 중 하나로 사도 요한이 성경에 가감하는 자는 누구에게나 저주를 선언하고 있다(계 22:18,19)는 것을 들고 있다.  이 근거에 따르면 성경의 정경이 마침과 동시에 예언의 은사도 그쳐진 셈이다.

그러나 이는 다음의 몇 가지를 무시한 해석일 뿐이다.

첫째, 가감의 금지 기사는 요한계시록 자체와 관계된 것이다.  즉, 동 기사는 성경전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성경의 마지막 책에 관한 것을 언급한 것이다.

둘째, 요한계시록이 신약성경에서 마지막으로 쓰여졌다는 증거가 없다.  어떤 학자는 요한 일서, 이서, 삼서, 심지어 요한복음이 요한계시록 이후에 쓰여졌다고 믿고 있다.

셋째, 4세기가 되어서야 그리스도교회는 어떤 책을 신약성경에 포함시킬지 여부에 대한 합의에 도달했다.

요컨대, 요한계시록 끝 부분에서의 요한의 경고는  AD 100년 이후 등장한 예언적 영감의 은사를 배제하지 않고 있다.John R. W. Stott, Baptism and Fullness (Downers Grove, III.: Inter Varsity Press, 1976), pp. 100-102.

신약 정경의 종결과 더불어 거룩한 진리에 대한 새로운 계시의 가능성을 배제한다고 주장한 것을 두고 영국 학자 베이커(J. P. Baker)는 다음과 같이 대응 설파하고 있다.

다른 이들은 혹시 이 신약성서 정경의 완성을 고린도전서 13:8에 따라 예언이 폐하는 때와 동일시하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가 얼굴을 대면하고 보는, 말하자면 “온전한 것이 올 때”, 이러한 은사들이 폐할 것이라고 분명히 보여 주는 문맥에 어긋나는 논법이 된다.

그리스도안에 있는 하나님과 구원의 길, 그리스도인의 삶의 원칙 등에 관하여는 새로운 계시가 없을 것이라는 사실에는 모두가 동의할 것이다.  그러나 죽은 우상들과는 달리, 말씀하시고 역사 하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왜 교회, 국가, 또는 개인에게 특별한 지역적 지도를 하시거나 , … 다른 (예언적) 진술들의 시험기준이 되는 기록된 성경말씀과 완전히 일치한 예언(prediction)의 방식으로 경고 또는 격려하는 일을 위한 예언 은사를 사용하실 수 없다는 이유를 납득할 수 없다.J. P. Baker, "Prophecy, Prophets," cited in The Illustrated Bible Dictionary (Grand Rapids, Mich.: Baker Book House, 1980), Vol. III, pp. 1286, 1287.

오늘날 성경의 존재가 그 밖의 다른 영감된 권위의 등장을 배제하고 있지 않다.  반대로 구약과 신약성경에 나오는 하나님 말씀에는 성령의 은사(예언을 포함하는)가 예수님이 오실 때까지 자기 백성들 사이에서 계속 나타날 것을 말세에 사는 독자들에게 말해 주고 있다.  성경과 예언의 은사는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하는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그 둘 다를 가질 수 있으며 또한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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