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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 재림 전 심판, 예언의 신에 관한 질문과 답변

21. 십자가와 재림 전 조사심판[성소 정결]은 조화될 수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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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다니엘서에 나타난 재림 전 심판과 성소 정결
“그가 내게 이르되 이천삼백 주야까지니 그 때에 성소가 정결하게 함을 입으리라 하였느니라”(단 8:14). 앞의 질문들에서 설명한 대로 이 본문은 2,300주야라는 예언적 기간의 끝 곧 1844년에 하늘 성소의 정결이 이뤄질 것을 말한다(참조 히 9:22, 23). 

다니엘서의 시간 예언들은 다음과 같이 간단하게 요약될 수 있다. 다니엘 2장(신상 예언)과 다니엘 7장(짐승들에 관한 이상)은 바벨론, 메대바사, 헬라, 로마 등 여러 나라를 포함하는 긴 시간 예언임이 분명하다(단 2:37-4; 7:17-22). 그것들이 긴 시간임을 다니엘서 본문 자체가 명시한다. 다니엘 8장은 7장을 조금 다른 각도에서 보여 주는 예언이다. 7장은 재림 전에 있을 심판을 말하고 8장은 하늘 성소의 정결을 묘사한다. 8장의 긴 시간 예언(2,300주야)을 알기 위해 기도한 다니엘에게(8:27; 9:1-23) 9장의 70이레 예언(9:24-27)이 주어졌다. 그러므로 다니엘 9장은 8장을 여는 열쇠이다.

70이레 예언은 2,300주야의 시작점과 그리스도의 초림과 죽음, 예루살렘의 멸망 그리고 그 후의 일들을 알려 주는 490년의 긴 시간 예언이다. 490년은 2,300주야/년에서 끊어낸 것이라고 다니엘서 본문이 말하므로(9:24) 490년은 2,300년에 속하며, 앞의 논의들에서 설명한 것처럼 2,300년은 490년 기간에 이어져 1844년까지 이른다. 그러므로 다니엘 2장과 7장과 8장을 평행적 관점으로 대조해 보면, 다니엘 9장의 십자가 사건 이후에 있을 다니엘 8:14의 하늘 성소의 정결과 다니엘 7장의 재림 전 심판(9-14절)은 같은 사건으로, 같은 시기에 일어날 일이다. 그러므로 재림 전에 있을 우주적 심판에는 하늘 성소의 정결(8:14), 작은 뿔에 대한 정죄 심판(7:23-26), 성도를 옹호하는 조사심판(7:10, 19, 22) 등을 포괄한다. 그러므로 데스먼드 포드처럼 재림 전 심판과 조사심판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다니엘서 8장과 로마서 3장
“이천삼백 주야까지니 그때에 성소가 정결하게 함을 입으리라[히브리어 니츠다크]”(8:14). 그러면 “성소가 정결케 되다”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  히브리어로 “니”는 수동태를 나타내는 접두사이고 “차다크”는 “의롭다”라는 뜻이다. 이에 비추어 이 본문을 영어로 간단하게 번역하면 “then the sanctuary will be justified”가 될 수 있다. 로마서 3장은 이와 관련하여 흥미로운 점을 보여 준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십자가로 무슨 일을 이루시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그 장은 결론적으로 이렇게 말한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롬 3:25-26).
이 본문을 분석하여 간단하게 정리하면 이렇다.

십자가는 두 가지 일을 한다. 곧 십자가로 말미암아 하나님도 의롭게 되고(justified) 예수 믿는 자도 의롭게 된다(justified)는 말이다. 십자가는 개인의 죄 문제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주 앞에서 판단 받으실 때 의롭게 되기 위해 필요했다는 말이다(참조 롬 3:4).

이스라엘의 속죄 제사 제도
이스라엘의 속죄 제사 제도를 보면 이 말이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될 수 있다. 레위기의 속죄 의식은 세 국면으로 되어 있었다. 뜰의 번제단에서는 속죄를 위한 양이 항상 죽임을 당한다. 그리고 매일의 속죄제 양의 피(레 4-6장)는 경우에 따라 지성소의 휘장 앞에 뿌려지거나 분향단이나 번제단에 발라진다(apply). 그리고 매년 1차 대제사장이 지성소로 속죄 염소(“여호와를 위한 염소”)의 피를 가지고 들어가서(매일의 제사에서 제물에게 안수함으로써 죄인의 죄가 이미 성소에 옮겨져 있으므로 대속죄일에는 “여호와를 위한 염소”에게 안수하지 않았다) 지성소-성소-뜰 순으로, 즉 매일의 제사와는 역순으로 나오면서 피를 발라 성소를 정결케 하는 예식을 한다(레 16장).

레위기를 보면 “속죄하다”(make atonement, 히브리어 킵페르, 카파르의 강조형 동사)라는 말이 약 50번 나온다. 그 동사는 매일의 속죄 제사나 연례 대속죄일 봉사에 동일하게 적용된다. 매일의 제사에서는 “제사장이 속죄한 즉” 죄인이 죄 사함을 받는다는 공식이 반복된다. 속죄의 과정 후에 그 결과로 죄인이 사함을 받는다. 말하자면 매일의 속죄 제사에서는 죄인으로부터 죄가 정결케 된다.

그러나 “속죄하다”라는 같은 동사가 대속죄일에는 다르게 적용된다. 대제사장이 “또 백성을 위한 속죄제 염소를 잡아 그 피를 가지고 장 안에 들어가서 그 수송아지 피로 행함같이 그 피로 행하여 속죄소 위와 속죄소 앞에 뿌릴지니 곧 이스라엘 자손의 부정과 그 범한 모든 죄를 인하여 지성소를 위하여 속죄하고 또 그들의 부정한 중에 있는 회막을 위하여 그같이 할 것이요”(레 16:15-16). “그는 여호와 앞 단으로 나와서 그것[번제단]을 위하여 속죄할지니 곧 그 수송아지의 피와 염소의 피를 취하여 단 귀퉁이 뿔들에 바르고 또 손가락으로 그 피를 그 위에 일곱 번 뿌려 이스라엘 자손의 부정에서 단을 성결케 할 것이요 그 지성소와 회막과 단을 위하여 속죄하기를 마친 후에”(레 16:18-20). 즉 매일의 제사에서는 죄인을 속죄하지만 대속죄일에는 지성소와 회막과 뜰의 단을 위해 속죄한다. 1년 동안 “이스라엘 자손이 범한 죄와 부정을 인하여, 부정한 중에 있는” 성소를 정결케 한다고 되어 있다. 성소의 각 부분을 속죄한 결과가 바로 정결이다(히브리서 타헤르). 매일 속죄의 결과는 죄인의 용서이고 대속죄일 제사의 결과는 성소의 정결이다.
그런 후 “아론은 회막에 들어가서 지성소에 들어갈 때에 입었던 세마포 옷을 벗어 거기 두고 거룩한 곳에서 물로 몸을 씻고 자기 옷을 입고 나와서 자기의 번제와 백성의 번제를 드려 자기와 백성을 위하여 속죄하고”(레 16:23-24). “이 날에 너희를 위하여 속죄하여 너희로 정결케 하리니 너희 모든 죄에서 너희가 여호와 앞에 정결하리라”(레 16:30).

마지막으로 성소가 정결케 된 후 대제사장이 자기와 백성을 속죄하므로 백성이 최종 정결케 되었다. 그런데 이 매일의 속죄 제사와 연례 속죄 봉사의 모든 국면은 피에 의해 집전된다. 이는 구원과 속죄의 모든 국면이 십자가의 피에 근간을 두고 행해진다는 것을 대표한다. 언급한 대로 십자가를 상징하는 번제단에서 죽임을 당한 속죄양의 피가 흘려지고, 그 흘려진 피로써 속죄가 끝난 것은 아니었다. 속죄를 위한 절차가 있었다.

“그 수송아지를 회막문 여호와 앞으로 끌어다가 그 수송아지 머리에 안수하고 그것을 여호와 앞에서 잡을 것이요 기름 부음을 받은 제사장은 그 수송아지의 피를 가지고 회막에 들어가서 그 제사장이 손가락에 그 피를 찍어 여호와 앞 곧 성소 장 앞에 일곱 번 뿌릴 것이며 제사장은 또 그 피를 여호와 앞 곧 회막 안 향단 뿔에 바르고 그 송아지의 피 전부를 회막문 앞 번제단 밑에 쏟을 것이며”(레 4:4-7). “기름 부음을 받은 제사장은 그 수송아지의 피를 가지고 회막에 들어가서 그 제사장이 손가락으로 그 피를 찍어 여호와 앞, 장 앞에 일곱 번 뿌릴 것이며 또 그 피로 회막 안 여호와 앞에 있는 단 뿔에 바르고 그 피 전부는 회막문 앞 번제단 밑에 쏟을 것이며 그 기름은 다 취하여 단 위에 불사르되 그 송아지를 속죄제의 수송아지에게 한 것같이 할지며 제사장이 그것으로 회중을 위하여 속죄한즉 그들이 사함을 얻으리라”(레 4:16-20).

여기서 속죄는 속죄양을 잡고 피만 흘림으로써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그것이 적용되고 발라져야 했다. 다시 말하면 매일의 제사에서 죄인이 속죄양에 안수하고 죄를 고백한 다음, 속죄양을 죽이고 그 피를 성소에 적용해야 속죄가 되었다. 그런 후 죄인은 죄에서 놓이고 용서받았지만, 성소에 적용된 그 피로 말미암아 용서된 죄인의 죄가 성소로 옮겨져 기록되었다. 사실 어떤 의미에서 그것은 피가 성소에 발라짐으로써 그들의 죄가 사함을 받았다는 것이 성소에 피로써 기록되고 보관된다는 말로 이해할 수도 있다.
1년 한 번 대속죄일에, 성소에 기록된 용서받은 죄의 기록도 다시 십자가를 상징하는 속죄 염소(“여호와를 위한 염소”)의 피로써 영원히 정결케 된다. 그리고 연중 속죄는 거기서 끝나지 않고 다른 한 마리 살아 있는 염소 곧 아사셀(사탄)을 상징하는 염소에게 안수하고모든 성소에서 정결케 한 죄와 부정을 전가시킨다. (이미 연중 성소에 죄가 옮겨져 있었기 때문에 대속죄일에는 “여호와를 위한 염소”에게는 안수하지 않고 피로써 성소를 정결케 하는 의식만 하고, 성소에서 정결케 된 죄를 아사셀 염소에게 전가시키기 위해 그 염소에게는 안수하는 것을 주목하라.) 그런데 의미심장하게도 아사셀 염소에게도“속죄하다”라는 말이 적용되고 있다. “아사셀을 위하여 제비뽑은 염소는 산 대로 여호와 앞에 두었다가 그것으로 속죄하고 아사셀을 위하여 광야로 보낼지니라”(레 16:10).

아사셀 염소로 속죄한다는 말의 의미는 다음 구절에 잘 설명되어 있다. “그 지성소와 회막과 단을 위하여 속죄하기를 마친 후에 산 염소를 드리되 아론은 두 손으로 산 염소의 머리에 안수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불의와 그 범한 모든 죄를 고하고 그 죄를 염소의 머리에 두어 미리 정한 사람에게 맡겨 광야로 보낼지니 염소가 그들의 모든 불의를 지고 무인지경에 이르거든 그는 그 염소를 광야에 놓을지니라”(레 16:20-22). 그러면 이런 의식들은 무엇을 상징했는가?

제사 제도의 원형적 의미
위의 구절에 대해 엘렌 화잇은 1888이후에 완결된 <각 시대의 대쟁투>에서 이렇게 말한다.
“구약 시대에 백성들의 죄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속죄 제물에게로 옮겨지고 그 제물의 피를 통하여 죄는 상징적으로 다시 성소로 옮겨졌던 것처럼 새 언약에는 회개한 자의 죄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에게로 옮겨지고, 그리스도께서는 그것을 실제적인 하늘 성소로 옮기셨다. 그런데 마치 모형적 지상 성소의 정결이 그것을 더럽혀 왔던 죄를 도말함으로 되었던 것처럼 하늘 성소의 실제적인 정결도 거기에 기록된 죄를 도말하거나 제거해 버림으로 이루어진다.”(각 시대의 대쟁투, 421)

“동시에 속죄 제물은 희생 제물이 되시는 그리스도를 가리켰고, 대제사장은 중보자 되시는 그리스도를 대표하였고, 아사셀은 참으로 회개한 자들의 죄를 마침내 지게 될 죄의 창시자, 사탄을 나타냈다. 대제사장이 속죄 제물의 피의 공로를 통하여 성소에서 죄를 도말했을 때, 그는 그것을 아사셀에게 씌워 주었다.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봉사를 마치실 때에 당신의 보혈의 공로로 하나님의 백성의 죄를 하늘 성소에서 도말해 버리실 때 그분께서는 그 죄를 최후의 형벌을 마땅히 받아야 할 사탄 위에 두실 것이다. 또한 아사셀에 해당되는 염소가 무인지경으로 쫓겨나서 다시 이스라엘 회중으로 돌아오지 못한 것처럼 사탄도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 앞에서 영원히 쫓겨나고 죄와 죄인들이 최후에 멸망할 때 그 존재가 사라질 것이다.”(위의 책, 422)

“지성소의 봉사가 마쳐지고, 속죄 제물의 피의 공로로 이스라엘의 모든 죄가 성소에서 옮겨지면, 아사셀 염소가 산 채로 여호와 앞에 끌려나왔다. 그때 대제사장은 회중 앞에서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불의와 그 범한 모든 죄를 고하고 그 죄를 염소의 머리에 두’었다(레 16:21). 그와 똑같은 방법으로 하늘 성소에서의 속죄 사업이 완성되면 하나님과 천사들과 구속받은 큰 무리들 앞에서 하나님의 백성의 죄는 사탄에게 놓일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유혹하여 범하게 한 모든 죄의 책임을 사탄이 져야 할 것으로 선고될 것이다.”(위의 책, 657).

속죄의 우주적 국면
그러므로 레위기의 속죄 제사 제도는 개인의 죄가 십자가로 말미암아 개인에게서 정결케(도말) 되어 하늘 성소로 옮겨졌다가 재림 전 조사심판 때 최종적으로 성소에서 정결케(도말) 되어 사탄[아사셀]에게 전가됨으로써 우주에서 죄가 완전히 처리될 천년기 말까지를 포괄하고 있다. 그런데 주목할 점은 표상적 성소 봉사를 통해 나타난 속죄가 매일의 봉사나 연례봉사나 간에 모두 십자가를 상징하는 그리스도의 흘려진 피에 기초되어 있었던 것처럼, 원형적 속죄의 봉사도 성소 봉사나 지성소 봉사나 간에 십자가의 보혈이 모든 속죄를 위한 토대 즉 원천(foundation, Provision)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소의 이런 속죄를 나타내는 도식은 십자가에서 모든 것이 다 끝났음을 나타내는 십자가 사건=뜰 봉사=성소 봉사=지성소 봉사가 아니라 십자가의 희생을 나타내는 번제단(뜰) >>> 그 희생을 토대로 진행되는 성소 봉사 >>>>> 그 희생을 토대로 진행되는 지성소 봉사가 되어야 더 정확하다. 기원후 31년 십자가 사건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제물로서 죽으신 대속적 죽음의 의미는 제사장으로서의 그리스도의 성소 봉사와 지성소 봉사를 통해 더 깊고 넓고 높게 즉 우주적으로 적용된다는 것을 뜻한다. 십자가는 개인뿐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 온 우주의 죄 문제를 위해 필요했다는 것이다. 엘렌 화잇은 이런 관점을 이렇게 말했다.

“구속의 경륜에는 사람을 구원하는 일보다 더 광범위하고 깊은 목적이 있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일만을 위하여 세상에 오시지 않으셨다. 그분께서 오신 것은 단순히 이 작은 세계의 거민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마땅히 생각해야 할 대로 생각하게 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온 우주 앞에 하나님의 품성을 옹호하시기 위해서였다. 당신의 위대한 희생의 이와 같은 결과, 곧 이 세상 사람뿐 아니라 다른 세계들의 지성적 존재들에게까지 그것이 끼치는 영향을 구세주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직전에 미리 내다보셨다.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제 이 세상의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 임금이 쫓겨나리라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요 12:31, 32). 사람의 구원을 위하여 죽으신 그리스도의 행위는 사람들이 하늘에 접근하는 일을 가능하게 할 뿐 아니라, 사탄의 반역을 처리하심에 있어서 하나님과 그분의 아들의 정당하심을 온 우주 앞에 옹호할 것이었다. 이것은 하나님의 율법의 영원 불변성을 확립할 것이며 죄의 본질과 결과들을 나타낼 것이었다.”(부조와 선지자, 68-69).

부언하면, 레위기의 매일의 봉사를 통해서 죄인 개인의 속죄는 속죄양의 피를 번제단 뿔에 또는 성소에 바름 또는 적용함(apply)으로써 충분했다. 그것으로써 개인의 죄는 죄인으로부터 도말되었다. 그렇게 하면 언제든지 개인을 위한 속죄는 완성된다. 즉 매일 죄인이 십자가로 이뤄진 대속적 희생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면(적용하면) 개인을 위한 속죄는 충분하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어떤 점에서 그런 개인에게는 십자가가 영적으로 말하면 대속죄일의 경험이 될 수 있다(참조 롬 3:25; 부록 12). 앞에서 언급한 대로, 히브리서는 그런 개인의 대속일적 측면(4:16; 10:19-22) 및 우주적 성소 봉사 곧 성소 정결과 재림 전 심판(9:22, 23; 27, 28; 10:30)을 동시에 암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서 상급을 받게 하는 것은 믿음(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이다.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느니라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우리는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히 10:35-39; 참조 히 11장).

그리스도께서 부활 후 승천하셔서 십자가의 희생을 토대로 하늘 성소에서 중보 봉사를 계속하시는 것은 이 십자가의 효력을 개인과 우주에 적용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십자가 후에 하늘 성소에서 개인과 우주를 위해 예수님이 어떤 봉사를, 왜 하시는지를 히브리서가 말한다. 앞의 질문들에서 논의한 대로 히브리서 전체의 논증을 살펴보면 이런 점이 분명해진다. 바울이 로마서에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죄인이 의롭게 되는 것을 상세히 논한 후에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롬 8:33-34)라고 말했는데, 같은 저자인 바울이 쓴 히브리서에서 이 말의 의미를 확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십자가의 속죄로 말미암아 죄인은 믿음으로 언제든, 누구든 용서받고 속죄를 경험할 수 있지만(롬 3:25), 십자가의 대속적 희생으로써 죄인을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그 놀라운 자비가 과연 공정한지, 의로운지, 공의로운지가 우주 앞에서 객관적으로 평가되고 확인되고 옹호되는 속죄의 우주적 국면이 필요했다(롬 3:4-6, 26). 십자가에서 끝낸 일을 왜 다시 재림 전 심판 때 거론하는가? 그것은 십자가로 말미암아 용서받은 죄인의 의롭게 됨(justification)을 우주 앞과 천사들 앞과 하나님의 자비를 공격하는 사탄 앞에서 확증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그 자비의 공의로움이 입증되어야 하기(justification)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엘렌 화잇은 <시대의 소망> “다 이루었다” 장에서 이렇게 말했다.

“‘다 이루었다’는 부르짖음은 천사들과 타락하지 않은 세계에 깊은 의미를 던져 준다. 위대한 구속 사업의 성취는 우리 뿐 아니라 그들을 위해서도 요긴하다.”(758). “사탄은 자기의 가면이 벗겨진 것을 알았다. 그의 행적은 타락하지 않은 천사들과 하늘 온 우주 앞에 공개되었다. 그는 살인자임이 판명되었다. 하나님의 아들의 피를 흘림으로써 그는 하늘 존재들의 동정을 더 이상 받을 수 없게 되었다. 그때부터 그의 사업은 제한을 받았다.”(761).

사탄은 하늘에서 반역할 때 하나님은 무자비한 분이라고 공격했지만 십자가 이후에는 그런 공박이 효력이 없어져 그의 사업이 제한을 받게 되자 그의 전략을 바꾸었다고 엘렌 화잇은 말한다. “사탄은 자기가 반역한 후에 하늘에서 추방당했기 때문에 사람들도 하나님의 은총에서 영원히 제거되어야 마땅하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하나님께서 아직도 죄인들에게 은혜를 나타내고 계시므로 그분은 공의로우실 수 없다고 주장한다.”(761).

“사탄은 또 다른 속임수를 내놓을 것이었다. 그는 하나님의 자비가 그분의 공의를 파괴시켰고 그리스도의 죽음이 하나님의 율법을 폐기시켰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만일 율법을 변경시키거나 폐기시킬 수 있었다면 그리스도께서 죽으실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율법을 폐기할 수 있다면 범죄는 영원히 계속될 것이며 이 세상은 사탄의 지배 하에 있게 될 것이다. 율법은 결코 변함이 없으며 인류는 이 교훈을 순종함으로써만 구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던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율법을 확립하신 바로 그 방법을 사탄은 율법을 파괴한 행위라고 주장했다. 그러므로 이 문제를 놓고 그리스도와 사탄 사이의 대쟁투의 마지막 싸움이 벌어질 것이다.”(762-763).

사탄이 하나님의 십자가의 자비가 그분의 공의를 파괴시켰다고 반박했다고 엘렌 화잇은 말한다. 과연 하나님의 십자가의 자비가 공의를 확립할 수 있는가라고 반박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문제(십자가의 용서하시는 자비가 과연 공의로운지)를 놓고 대쟁투의 마지막 싸움이 벌이질 것이라고 엘렌 화잇은 말한다. 하나님의 자비의 공의성이 옹호되고(vindicated) 정당화(justified, 의롭게 되다)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십자가에서 증명된 자비가 참으로 공정한 것인지가 재림 전 곧 1844년에 시작된 지성소 봉사(성소정결, 조사심판), 재림 후 심판(천년기 심판), 최종 언도 심판 등을 통해서 입증되는 국면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시대의 소망>의 “다 이루었다” 장에서 엘렌 화잇은 십자가 후에 종말까지 벌어질 일을 파노라마처럼 묘사하면서 사탄에 의해(아마 작은 뿔에 의해) 율법이 유린될 것을 내다본다(760-763). 하나님의 자비와 공의가 왜곡되고 하나님이 공정하지 못한 분임을 사탄이 오도하려는 일들을 벌일 것이다. 그녀는 그 긴 역사를 이렇게 요약한다.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전쟁은 하늘에서 시작되었고, 그 전쟁은 세상 종말까지 계속될 것이다. 모든 사람은 시험을 받게 될 것이다. 순종이냐 불순종이냐는 온 세계가 결정해야 할 문제이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율법과 사람의 율법 중에 어느 하나를 선택하라는 요구를 받게 될 것이다. 그 때 분리(分離)의 선은 그어질 것이며 거기에는 오직 두 가지 부류의 사람 밖에는 없을 것이다. 모든 품성은 적나라하게 드러날 것이며 모든 사람은 저희가 충성의 편을 택했는지 아니면 반역의 편을 택했는지를 보여 줄 것이다.”(763).
“그때에 끝이 이를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율법을 옹호하시고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실 것이다. 사탄과 그의 반역에 가담한 자들은 모두 끊어질 것이다. 죄와 죄인들이 다 파멸될 것이다.”(763).

아마도 이런 진술은 이런 일들이 작은 뿔의 행동과 그것에 대한 정죄 심판(다니엘 7장; 8장) 그리고 재림 전 조사심판을 통해서 이뤄질 것을 암시한다. 이렇게 긴 설명을 한 후 엘렌 화잇은 “다 이루었다” 장을 다음과 같이 결론짓는다.

“그때에 죄는 그의 본성을 드러내고 사탄은 그의 성격을 드러내게 될 것이다. 그 때에 죄가 근절됨으로 인하여 당신의 뜻을 행하기를 즐거워하고 저희 마음속에 당신의 율법이 있는 우주의 거민들 앞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옹호되고 그분의 영광이 확립될 것이다. 그러므로 천사들이 구주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기뻐한 것은 당연하였다. 왜냐하면 저희가 그 때 모든 것을 다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그들은 죄와 사탄의 멸망이 영원히 확실해졌다는 것과 인류의 구속이 보장되었다는 것과 이 우주가 영원히 안전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리스도 자신은 갈바리에서 이루신 희생의 결과를 충분히 이해하셨다. 그분은 이 모든 것을 내다보시고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었다.’라고 부르짖으셨다.”(764).

죄의 본성이 드러나고 사탄의 성격이 드러나고 죄가 근절되고 하나님의 사랑(자비와 공의)이 옹호되고 우주적 속죄가 이뤄져 하나님의 도덕적 정부가 영원히 회복되어 안전히 설 것을 내다보시고 “다 이루었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십자가의 대속이 불완전하다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로 말미암아 그 후 이뤄질 결과들을 모두 내다보시고 “다 이루었다”고 말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재림 전 심판은 십자가에 끝나버린 속죄를 다시 시작한다든지, 이미 용서받은 죄를 다시 들춰내어 꼬투리를 잡으려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로 용서받고 의롭게 되고 온전케 된 죄인을 우주 앞에서 객관적으로 옹호하고 그를 의롭다고 선언한 하나님의 십자가의 자비가 공의로운지를 영원히 확증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다니엘 8장의 성소 정결과 다니엘 7장의 조사심판이 의미하는 바이다.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이 일개 피조물 앞에서 책들을 펴 놓고 자신의 자비가 공의로운지를 입증하고 설명하는 것이다. 우리 같은 죄인을 용서하는 것이 공의로운지를 심의하고 변호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과정에서 최종적 확증은 십자가의 피로 말미암아 이뤄진다. 하나님의 마지막 히든카드 곧 하나님의 최종적 변호의 증거는 십자가의 피뿐이다. 이것이 바로 재림 전 조사심판에서 이뤄질 하늘 성소의 정결, 곧 우주적 속죄의 복음이다.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와 조사심판에 대한 엘렌 화잇의 진술
엘렌 화잇은 <각 시대의 대쟁투> “조사심판”이라는 장에서 이런 사실을 분명히 하고 있다(부록 10, 42를 참조하라).

“구약 시대에 백성들의 죄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속죄 제물에게로 옮겨지고 그 제물의 피를 통하여 죄는 상징적으로 다시 성소로 옮겨졌던 것처럼 새 언약에는 회개한 자의 죄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에게로 옮겨지고, 그리스도께서는 그것을 실제적인 하늘 성소로 옮기셨다. 그런데 마치 모형적 지상 성소의 정결이 그것을 더럽혀 왔던 죄를 도말함으로 이뤄졌던 것처럼 하늘 성소의 실제적인 정결도 거기에 기록된 죄를 도말하거나 제거해 버림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이 일이 이루어지려면 누가 죄를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속죄의 혜택들을 받을 자격이 있느냐 하는 것을 결정하기 위하여 기록책을 조사하는 일이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성소의 정결에는 조사하는 일, 곧 심판하는 일이 포함되어 있다. 이 일은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하여 재림하시기 전에 이루어져야 한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오실 때에는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실 상급을 가져오실 것이기 때문이다(계 22:12 참조).”(421-422).

“혼인 예식이 있기 전에 왕이 먼저 와서 모든 사람이 다 예복, 곧 어린양의 피로 씻어 깨끗하게 된 흠 없는 품성의 옷[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입고 있는지 알기 위하여 손님들을 살펴보게 된다(마 22:11; 계 7:14 참조). 부족한 것이 발견되는 자는 밖으로 내어 쫓김을 당하지마는 검사한 결과 혼인 예복을 입은 것이 인정되는 자는 모두 하나님의 가납하심을 받고, 그분의 나라에 들어가 그분의 보좌에 앉을 자격을 얻게 된다. 이와 같이 품성[그리스도의 의를 믿음으로써 얻은]을 검사하는 일, 곧 누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준비가 되었는지 결정하는 것이 곧 조사심판이요, 하늘 성소에서 하는 마지막 사업이다.”(428).

엘렌 화잇은 그리스도의 속죄의 은택(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받을 자격을 심사하고 심의하고 확증하는 것을 조사[심사, 심의] 심판이라는 용어로 표현했다. 또 그녀는 성소의 정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러므로 ‘이천삼백 주야까지니 그 때에 성소가 정결하게 함을 입으리라’라고 한 예언이 하늘에 있는 성소를 가리키는 것임은 전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성소의 정결이 무엇이냐고 하는 가장 중요한 의문이 해답되지 아니한 채 남아 있다. 구약 성경은 지상 성소와 관련하여 성소를 정결하게 하는 봉사가 있었던 것을 말한다. 그런데 하늘 성소에도 정결케 할 무엇이 있을까? 히브리서 9장에는 지상 성소와 하늘 성소의 정결에 대하여 분명히 가르쳐 준다.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은 이런 것들로써 정결케 할 필요가 있었으나 하늘에 있는 그것들은 이런 것들보다 더 좋은 제물로 할지니라’(히 9:22, 23). 좋은 제물은 곧 그리스도의 보혈이다.”(417).

“그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께서 속죄의 마지막 봉사를 행하시기 위하여 지성소에 들어가셨을 때 첫째 칸의 봉사는 마쳐졌다. 곧 첫째 칸의 봉사가 그쳤을 때 둘째 칸의 봉사가 시작되었다. 모형적 봉사에서 대제사장이 대속죄일에 성소를 떠나갔을 때 그는 충심으로 죄를 회개한 모든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여 속히 제물의 피를 드리고자 하나님 앞으로 들어갔다. 그와 같이 그리스도께서도 우리의 중보자로서의 첫째 단계의 봉사를 마치시고 그 사업의 다른 분야에 들어가서 죄인들을 위하여 흘리신 당신의 피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지금도 탄원하고 계신다.”(428-429).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유일의 길, 곧 하늘 성소의 봉사를 통한 길을 거절하였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과 교통할 수 없게 되었다. 그들을 향해 열려 있던 문은 닫혀졌다. 그들은 참된 희생 제물이시며 하나님 앞에 있는 유일한 중보자이신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분의 중보 사업을 통한 축복을 받을 수 없었다. 믿지 아니한 유대인들의 상태는 소위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면서도 경솔하고 불신적이며, 우리의 자비하신 대제사장의 사업을 고의적으로 알지 아니하고자 하는 자들의 상태를 예증해 준다.”(430).

다음의 엘렌 화잇의 진술들은 매우 의미 있다.
“진심으로 죄를 회개하고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피를 그들의 속죄 제물로 주장한 사람들에게는 하늘의 책에 기록된 그들의 이름 아래 용서받았다는 말이 기록된다. 그들이 그리스도의 의에 참여하는 자가 되고 그들의 품성이 하나님의 율법과 조화된다는 것이 나타날 때, 그들의 죄는 도말되고 그들 자신이 영원한 생명을 받기에 합당한 사람들이 될 것이다.”(483).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죄에 대하여 변명하지 않으신다. 그러나 그들의 회개와 믿음을 보여 주시고 그들이 용서받은 것을 주장하신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상한 손을 하나님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 앞에 드시고 ‘내가 저희 이름을 압니다. 내 손바닥에 저희 이름을 새겼습니다.’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시 51:17). 그리고 당신의 백성을 고소하는 자를 향하여 ‘사탄아 여호와가 너를 책망하노라 예루살렘을 택한 여호와가 너를 책망하노라 이는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가 아니냐’(슥 3:2)라고 말씀하신다.”(484).

엘렌 화잇은 <각 시대의 대쟁투> “조사심판” 장을 마치면서 명백하게 천명한다. 십자가와 성소 봉사가 둘 다 구원 역사에서 얼마나 필요한 것인지를 밝혔다.
“하늘 성소에서 사람을 위하여 진행되는 그리스도의 중보 사업은 구원의 계획에 있어서 십자가 상에서의 그분의 죽음과 마찬가지로 긴요하다. 그분께서 부활하신 후 승천하여 하늘에서 완성하실 일은 그분의 죽으심으로 시작되었다. 우리는 믿음으로 ‘앞서가신 예수께서 … 우리를 위하여 들어가”신(히 6:20) 그 휘장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거기는 갈바리의 십자가에서 나온 빛이 비치고 있다. 우리는 거기서 구속의 오묘를 더욱 밝히 살펴볼 수 있다. 인류의 구원은 하늘에서 무한한 값을 치르고 완성된다. 거기에 치러지는 희생은 하나님의 율법을 범한 데 대한 최대한의 요구에 해당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보좌로 나아가는 길을 열어 주셨으므로 그분을 믿음으로 그분께 나아가는 모든 사람의 진정한 소망도 그분의 중보를 통하여 하나님 앞에 상달될 수 있다.”(489).

이것이 바로 엘렌 화잇이 말하는 재림 전 조사심판의 복음이다. 작은 뿔이 저지른 만행으로부터 진리를 회복하고 성소 봉사의 기별을 회복하고 셋째 천사의 기별(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기별)을 회복하는 것 등도 “성소 정결”(니츠다크, Justified, 단 8:14)에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재림 전에 있을 조사심판 개념은 “조사”라는 말에 대한 오해로 곡해되었지만 사실은 옹호, 회복, 정결, 죄의 최종적 처리, 곧 하나님과 죄인이 십자가로 말미암아 옹호되고 변호되고 그분의 칭의가 영원히 우주 앞에서 확증되는 넓고 높고 깊은 의미를 포괄한다.

그러므로 엘렌 화잇에게 있어서 “속죄”(atonement)란 죄인 개인의 죄가 용서받고 칭의되는 것을 넘어서, 죄로 말미암아 파괴된 우주의 도덕적 질서와 화목(reconciliation)을 영원히 회복하는 것도 포함한다(참조 부록 16). (앞에서 언급한 대로 레위기의 문맥에서 “속죄하다”[make atonement]라는 말(히브리어 킵페르)도 “용서, 중보, 화해, 회복, 옹호, 정결, 대속” 등 다양한 기능적 의미를 포괄한다). 다시 말하지만, 십자가가 우리 같이 가망 없는 죄인을 구원했을 뿐 아니라 그 십자가로 말미암아 그 구원을 이루신 하나님이 우주 앞에서 영원히 옹호되고 하나님의 정부가 자비롭고 공의로운 정부인지가 입증되고 그분의 품성인 사랑(자비와 공의)이 온전히 드러나야 이 우주의 도덕적 정부는 재확립되고 다시는 죄가 기승을 부리지 못하게 될 것이다.

재림 전 심판의 이후의 속죄 과정
그래서 재림 전 심판 후에 있을 천년기 심판이라는 긴 과정도 필요할 것이다. 천년기 심판을 통해 하나님이 왜 죄인을 구원하지 못하는지를 온 우주 앞에서 공개할 것이다. 하나님은 구원받은 성도들이 묻는 “왜 그들을 구원하시지 않았는지”라는 질문에 답변해야 하고 그것을 증명해야 하고, 그래도 납득이 못할 경우 최종적으로 죄인들이 어떻게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초청을 거절했는지를 보여 주심으로써 변론은 종결될 것이다(참조 조지 나이트의 Cross of Christ, God's Work for Us, 102-121). 이 천년기 심판은 사실상 구원받은 성도가 하나님을 심판한다고 해야 더 적절하다. 재림 전 심판에서는 성도가 심판 받고 옹호되지만, 천년기 심판에는 하나님이 심판받고 옹호된(참조 롬 3:4-6). 즉 재림 전 심판에서는 성도와 하나님의 자비가 [십자가로] 옹호되고 재림 후 천년기 심판에서는 하나님의 공의가 [십자가로] 옹호된다고 말해야 옳다(롬 3:25-26). 

엘렌 화잇은 <각 시대의 대쟁투> 천년기 심판을 말하는 장에서 이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보좌 가장 가까이에는 한때 사탄의 사업에 열렬했으나 지금은 마치 불에서 꺼낸 타다 남은 나무와 같은 처지에서 깊고 열렬한 헌신의 마음으로 구주를 따르는 자들이 있다. 그 다음에는 거짓과 불신 가운데서 그리스도인 품성을 완성한 사람들과 그리스도교계에서 하나님의 율법이 폐기되었다고 주장할 때 하나님의 율법을 존중한 사람들과 각 시대를 통하여 믿음을 위하여 순교당한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 외에도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옷을 입고 손에 종려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양 앞에 서’있다(계 7:9). 그들은 전쟁을 마치고 승리를 얻었다. 그들은 달려갈 길을 달려가고 상급을 받았다. 그들의 손에 있는 종려가지는 승리를 표상하고, 흰옷은 지금 그들이 소유하고 있는 그리스도의 흠 없는 의를 상징한다. 구속받은 자들이 일제히 다음과 같은 찬양의 노래를 부르는데, 그 소리는 하늘 공간에 메아리치고 또 메아리친다.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있도다’(계 7:10).”(665).

“기록책들이 펼쳐지자마자 예수님의 눈은 악인들을 주목하신다. 그때 그들은 그들이 지금껏 범한 모든 죄를 깨닫는다. 그들은 그들의 발이 어디에서부터 순결과 성결의 길에서 벗어났는지, 그들의 교만과 반역이 그들을 얼마나 심하게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게 하였는지 깨닫게 된다. 그들을 죄에 빠지게 한 매혹적인 시험을 받은 것, 축복을 무시한 것, 하나님의 사자들을 모욕한 것, 경고를 거절한 것, 완고하고 회개하지 않은 마음으로 자비의 물결을 물리쳐 버린 것, 그 모든 것들이 마치 불로 기록된 문자와 같이 나타난다. 보좌 위에 십자가가 나타난다.”(666).

악인들에 대한 최종적 정죄는 십자가의 자비를 거절한 데 있다는 것이 화잇의 주요 관점이다. 하나님이 죄인들을 영원히 제거하는 것에 대한 정당성 곧 그분의 공의는 십자가의 자비에 근거되어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십자가가 그분이 공의를 최종적으로 집행할 수 있는 최종적 근거가 된다.
“구원받은 무리들이 그들의 면류관을 구주의 발 앞에 던지면서 ‘그분께서 나를 위하여 돌아가셨다!’라고 부르짖을 때, 악한 자들은 구주의 얼굴에 나타난 거룩한 위엄과 찬란하게 빛나는 햇빛을 피하려고 애쓰지만 헛된 노력이 되고 만다.”(667).

“악인들은 마치 정신 나간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아들의 대관식을 주목한다. 그들은 주님의 손에 그들이 멸시하고 범한 하나님의 율법의 돌비가 쥐어져 있는 것을 본다. 그들은 구원 받은 사람들이 경이와 환희와 찬송의 소리를 높이는 것을 본다. 그 음조의 물결이 성 밖에 있는 무리들에게 퍼져나갈 때 모든 사람은 한 음성으로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기이하시도다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계 15:3)라고 외치면서 엎드려 생명의 왕께 경배한다.”(668-669)
악인들이 십자가를 거절했으므로 율법이 그들을 정죄하는 것이다. 그러나 구원받은 무리들은 하나님의 십자가의 길이 얼마나 공의로운지를 찬양한다.

“사탄은 그의 고의적인 반역이 그로 하여금 하늘에 적합하지 못하게 만들었음을 안다. 그는 전력을 다하여 하나님을 대적하여 싸워 왔다. 하늘의 순결과 평화와 조화는 그에게 극심한 고통이 될 것이다. 하나님의 자비와 공의에 대한 그의 비난은 이제 잠잠해졌다. 그가 여호와께 돌리려고 노력해 온 비난이 자기에게로 남김없이 돌아온다. 이제 사탄은 엎드려 자기에게 내리는 판결의 공의로움을 고백한다.”(670).
사탄도 하나님의 공의로움을 고백한다.

“오랫동안 계속되어 온 진리와 오류에 관련된 모든 문제는 이제 분명해졌다. 반역의 결과, 곧 하나님의 율법을 거역한 결과가 모든 지적 존재자의 눈앞에 분명해졌다. 하나님의 통치와 반대되는 사탄의 법칙이 실천된 결과가 무엇임이 온 우주에 공개되었다. 사탄 자신의 사업이 그를 정죄했다. 하나님의 지혜와 공의와 자비는 완전히 옹호되었다. 대쟁투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취하신 처사가 오로지 당신의 백성들의 영원한 행복과 그분께서 창조하신 모든 세계의 유익을 위하여 하신 일임이 드러난다.”(670-671).

“그때 그분께서는 의인의 무리와 악인의 무리가 다 같이 들을 수 있는 음성으로 외치신다. ‘나의 피로 산 자들을 보라! 나는 그들을 위하여 고난을 받았다. 나는 그들을 위하여 죽었다. 나는 그들이 영원토록 내 앞에서 살아가게 하고자 그런 일을 당하였다.’ 그때 보좌를 둘러 있는 흰옷을 입은 무리들이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이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계 5:12)라고 찬양의 노래를 부른다.”(671)

이것이 그분의 최종적  선언이다. 십자가의 자비와 공의 및 그 효력을 다시 우주 앞에 재천명하신다.
“오직 한 가지 기념물은 남게 된다. 우리 구주께서는 십자가의 표를 영원히 언제나 간직하실 것이다. 그분의 상하신 머리와 옆구리와 손발에는 죄가 빚어 놓은 잔인한 유일의 흔적이 남게 된다. 선지자 하박국은 영광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광선이 그 옆구리(영어 성경-방주)에서 나오니 그 권능이 그 속에 감취었도다’(합 3:4)라고 말한다. 인류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시기 위하여 붉은 피를 흘린 그 옆구리는 구주의 영광이 나타나고, ‘권능이 그 속에 감’추인 곳이다. 속죄의 희생 제물이 되심으로 구원하기에 능하셨던 그분께서는 하나님의 자비를 멸시한 자들에게 공의를 행하는 일에도 강하셨다. 그분의 굴욕의 표는 그분의 가장 큰 영광이다. 갈바리에서 상한 흔적은 영원한 시대를 통하여 주님께 대한 찬양을 불러일으키고 그분의 능력을 말해 줄 것이다.”(674).

십자가는 구원 받은 성도들과 우주에 영원한 기념물로 남게 될 것이다. 그 십자가의 흔적은 영원한 시대를 통하여 하나님의 도덕적 정부를 안전하게 지켜주는 표가 될 것이다. 십자가가의 효력과 능력이 없다면 다시 죄는 기승을 부릴 수 있기 때문이다.

“영원한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하나님과 그리스도에 대한 더욱 풍성하고 더욱 영광스러운 계시가 나타난다. 또한 지식이 발전되어 감에 따라 사랑과 존경과 행복도 증가될 것이다.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하여 배우면 배울수록 그분의 품성에 대한 그들의 감탄은 더욱 커질 것이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속죄의 풍성한 부와 사탄과의 대쟁투에 있어서의 놀라운 결과를 제시해 주실 때 구속받은 자들의 마음은 더욱 열렬한 헌신의 마음으로 감동되고, 그들은 더욱 충만한 기쁨으로 금거문고를 탄다. 그리하여 천천만만의 무리는 음성을 합하여 찬양의 대합창을 한다.”(678)

그리스도의 구속의 십자가에 대한 더 깊고 넓고 높고 영광스러운 계시가 계속하여 영원을 통하여 나타날 것이다. 하나님의 품성과 속죄의 풍성한 부요와 그 결과를 보고 감동되고 하나님의 사랑의 품성을 계속하여 배우고 감탄할 것이다.

<대쟁투 총서>의 마지막 장면이다.
“‘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만물이 가로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능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계 5:13). 대쟁투는 끝났다. 죄와 죄인들은 없어졌다. 온 우주는 깨끗해졌다. 오직 조화와 기쁨의 맥박만이 온 우주의 만물을 통하여 고동(鼓動)한다. 생명과 빛과 환희가 만물을 창조하신 분에게서 끝없이 넓은 우주로 퍼져나간다. 가장 작은 원자(原子)로부터 가장 큰 세계에 이르기까지, 만물은 생물계와 무생물계를 막론하고 조금도 흠이 없는 아름다움과 완전한 기쁨으로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선포한다.”(678)
만물은 다시 하나가 되고(atonement)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이 우주로 흘러나가고 모든 만물이 진정으로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고 고백하고 선포하면서 선악의 대쟁투는 끝나고 우주적 속죄는 완성된다.

맺는 말
엘렌 화잇은 “속죄”(Atonement [at-one-ment], reconciliation)를 이렇게 포괄적이고 우주적인 관점에서 보았다(참조 부록 16). 그러나 그녀는 속죄의 이 모든 과정의 중심에 십자가가 놓여 있고, 십자가가 모든 것의 기초(foundation), 대책 또는 준비(provision), 속죄의 수단(means of atonement)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렸으므로 자동적으로 죄인이 구원받고 우주의 속죄 또는 화목이 완성된 것은 아니었다. 속죄는 그 십자가의 완성된 대속의 효력이 개인과 우주에 적용되고 심화되고 확대되는 전 과정을 포괄한다. 사실상 엘렌 화잇이 밝힌 대로 십자가의 의미는 성소 봉사와 재림 전 조사심판과 천년기 심판과 마지막 최종 심판의 과정을 통과하면서 더 깊어지고 넓어지고 높아진다. 이것이 바로 재림교회가 엘렌 화잇을 통해 깨닫게 된 십자가의 우주적 복음, 우주적 속죄의 복음이다. 심판은 십자가의 복음과 절대로 배치되지 않는다.

하나님에 대한 이런 우주적 또는 포괄적 이해가 에베소서에 나오는 바울의 기도에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엡 3:18-19).




-임봉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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