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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 재림 전 심판, 예언의 신에 관한 질문과 답변

17. 히브리서 9:12은 십자가에서 속죄의 과정이 모두 끝났음을 말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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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히 9:12).

어떤 사람들은 이 본문이 십자가에서 모든 속죄의 과정이 끝났으므로 더 이상 그리스도의 하늘 성소 봉사가 필요 없고 성령께서 직접 중보하시면 충분하다는 의미로 해석하는데, 이 본문을 그렇게 이해하는 것은 히브리서 전체 문맥을 무시한 독단적인 해석이다. 어떤 이들은 그런 이해를 뒷받침하기 위해서 <한글판 킹제임스역>을 인용하기도 하는데 헬라어를 그렇게 번역할 수 있는 가능성은 있지만 전후문맥을 고려하지 않은 역본이다.

히브리서 9장과 10장은 히브리서 기자가 1-8장에서 편 긴 논증의 결론부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9:12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이전 문맥에서 히브리서 기자가 어떤 주장을 펴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히브리서는 기자는 서언(히 1:1-3)에서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시고…위엄의 우편에 앉으셨”다고 천명한다. 반대로 “죄를 정결케 하는 일”과 “위엄의 우편에 앉으셨”다는 말의 의미를 알려면 또한 이후 문맥 또는 히브리서 전체의 논증을 살펴보아야 한다. 
 
<재림교회 성경주석>은 이 본문을 이렇게 설명한다.
“그리스도는 자신의 속죄로 말미암아 전반적인 죄의 정결(그 일은 십자가의 희생으로 가능해졌고, 마침내 죄에서 우주를 정결케 할 것임, 히 9:22, 23 참조)과 죄로부터 각 개인을 정결케 하는 일 둘 모두를 이루었다. 십자가에서 그리스도는 희생제물로서 자신의 사역을 끝냈다. 그는 자신의 피를 흘렸고 그리하여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열리’게 된 것이다(슥 13:1). 그러나 [그 흘린 피를 토대로] 제사장(중보자)으로서 그의 봉사는 계속된다. 그는 아버지 앞에 계신 우리의 대언자이시다(참조 히 7:25).”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은 십자가의 희생을 토대로 개인뿐 아니라 우주를 정결케 하는 일도 포함한다는 말이다. 승천 후 그가 보좌 우편에 앉으심에 대해 <재림교 성경주석>은 또 이렇게 설명한다.

“그리스도의 앉으심은 공식적 좌정(坐定), 즉 직무에 취임함, 즉위식, 대관식(戴冠式)이었다. 이는 권위의 서임(敍任), 곧 관할권을 행사할 그의 권한에 대한 승인이었다. 그것은 특별한 중보자로서 그의 활동의 시작이지 끝은 아니었다. 그것은 그의 중보사역에 하나님이 인을 치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당신의 오른편에 앉게 함으로써 그리스도가 땅에서 행한 사업을 승인하였고 받아들였으며 그를 대제사장으로 불렀으며, 그 이후로 그가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중보자로서 역할을 할 수 있는 권위를 부여하였다(히 7:17, 21-25).”

엘렌 화잇은 속죄를 이루시는 분으로서의 그리스도를 속죄제물, 제사장, 중보자로 제시했다. 그의 사역이 희생제물이 되심으로 모두 끝난 것은 아니었다(레위기의 제사제도는 짐승의 피를 잡을 뿐 아니라 제단이나 성소에 발라야 효력이 발생하였다.).

엘렌 화잇은 이런 사실을 다음과 같이 요약적으로 말했다.
“그를 위하여 속전이 지불되었던 이 아기가 바로 온 세상의 죄를 위한 속전을 지불하실[대속] 분이셨다. 그는 참된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시요, ‘갈리지 아니’하는 ‘제사직분’의 머리시요, ‘높은 곳에 계신 위엄의 우편에 앉으’신 중보자이셨다(히 10:21, 7:24, 1:3).”(시대의 소망, 52-55).

“그들은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롬 8:34)라는 큰 논증을 가지고 더욱 높이 믿음의 손을 폈다. 하늘 궁정으로 들림을 받은 거룩하신 분께서는 약속을 신실히 지키시고, 지상에 있는 신자들에게 당신의 풍성하신 은덕을 나누어 주셨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좌정하신 것은 제자들 위에 성령이 부어진 사실로 확인되었다.”(교육, 95).

더 구체적으로, 히브리서의 저자는 그리스도가 이 땅에 인성을 쓰시고 오신 것은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들을 구속하기 위함이었다고 말한다. 자비와 충성(공의)을 이룬 대제사장이 되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이다. 십자가가 종착역은 아니었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저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충성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구속하려 하심이라 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느니라”(히 2:17-18).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히 3:1).

계속하여 히브리서의 저자는 십자가에서 구속을 이루시고 승천하셔서 은혜의 보좌 앞에 대제사장으로 우리를 위해 계시니 언제든지 담대하게 거기로 나아가라고 독려한다. 우리의 대제사장은 우리를 동정하시는 분이시므로 죄인은 십자가의 피에 의지하여 은혜의 보좌에 당당하게 언제든지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 4:14-16).

우리를 위하여 대제사장이 되기 위해 휘장 안으로 들어가셨다(휘장의 의미에 대해서는 다음 제7장의 질문 19를 참조하라).

“우리가 이 소망이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가나니 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가셨느니라”(히 6:19-20).

예수는 영원히 갈리지 아니하는 제사직분을 갖고 항상 살아서 중보하신다.
“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직분(priesthood)도 갈리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중보]하심이니라”(히 7:24-25).

그분은 하늘 참 장막에서 봉사하시는 분(Minister), “더 좋은 언약의 중보”이시다.
“이제 하는 말의 중요한 것은 이러한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라 그가 하늘에서 위엄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으니 성소와 참 장막에 부리는 자라(minister, “봉사하는 자”) 이 장막은 주께서 베푸신 것이요 사람이 한 것이 아니니라 대제사장마다 예물과 제사드림을 위하여 세운 자니 이러므로 저도 무슨 드릴 것이 있어야 할지니라 예수께서 만일 땅에 계셨더면 제사장이 되지 아니하셨을 것이니 이는 율법을 좇아 예물을 드리는 제사장이 있음이라…그러나 이제 그가 더 아름다운 직분을 얻으셨으니 이는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더 좋은 언약의 중보시라”(히 8:1-6).

그런 다음, 히브리서 9:12이 나온다. 그러므로 9:12은 이런 문맥에 비추어 읽고 이해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redemption, <개정개역판>에는 “구속”이라고 되어 있음)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히 9:11-12).
여기서 헬라어로 “속죄”라는 말은 좁은 의미의 “속전을 지불함, 속량, 구속, 대속”(뤼트로시스)을 뜻하는 단어이다. 십자가로 죄의 값을 영원히 지불하고 하늘 성소로 단번에 들어가셨다는 말이다. 히브리서의 저자는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신” 이유에 대해 앞의 문맥에서 자세히 논했다.

그러나 히브리서의 저자는 예수께서 십자가의 대속을 토대로 하늘 성소에서 중보자로서 봉사하신다는 논증을 마친 후 그 이상의 속죄 측면에 대해 암시적으로 언급한다.
“또한 이와 같이 피로써 장막과 섬기는 일에 쓰는 모든 그릇에 뿌렸느니라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은 이런 것들로써 정결케 할 필요가 있었으나 하늘에 있는 그것들은 이런 것들보다 더 좋은 제물로 할지니라”(히 9:21-23).

히브리서의 저자는 고대 성소에서 거의 모든 것이 피로써 정결케 되었듯이 하늘에 있는 것도 더 좋은 제물 곧 십자가의 피로써 정결케 할 필요가 있고 주장한다. 그러나 히브리서는 승천 후 하늘 성소에서 진행되는 봉사를 전반적으로 묘사하고, 하늘 성소가 정결케 될 것에 대해서는 미래에 있을 사건으로 암시할 뿐이다. 히브리서는 예언서가 아니고 기원후 1세기에 기록된 신학적인 설교이므로, 십자가의 피의 속죄(속전, 구속, 대속)이 어떻게 성소 봉사의 기초가 되는지를 말하고 성소가 최종 정결케 되는 사건에 대해서는 암시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하늘 성소의 정결은 예언서인 다니엘서를 보아야 이해할 수 있다(자세한 설명은 제7장 질문 21을 참조하라) . 다니엘 8:14은 2,300주야 끝(1844년)에 있을 하늘 성소 정결을 예언한다. 그러나 여기서 히브리서 저자가 분명하게 말하는 점은 그 하늘 성소의 정결이 “더 좋은 제물”곧 그리스도의 희생을 토대로 이뤄진다는 것이다.

엘렌 화잇은 히브리서의 이 본문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이천삼백 주야까지니 그 때에 성소가 정결하게 함을 입으리라’고 한 예언이 하늘에 있는 성소를 가리키는 것임은 전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성소의 정결이 무엇이냐고 하는 가장 중요한 의문이 해답되지 아니한 채 남아 있다. 구약 성경은 지상 성소와 관련하여 성소를 정결하게 하는 봉사가 있었던 것을 말한다. 그런데 하늘 성소에도 정결케 할 무엇이 있을까? 히브리서 9장에는 지상 성소와 하늘 성소의 정결에 대하여 가르쳐 준다.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은 이런 것들로써 정결케 할 필요가 있었으나 하늘에 있는 그것들은 이런 것들보다 더 좋은 제물로 할지니라’(히 9:22, 23). 좋은 제물은 그리스도의 보혈이다.”(각 시대의 쟁투, 417)

그런 다음 히브리서는 심판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그가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자주 고난을 받았어야 할 것이로되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사로 드려 죄를 없게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히 9:26-28). 곧 이어 히브리서의 저자는 이 모든 일에서 상급을 받게 하는 것이 믿음 곧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임을 밝히고 있다(히 10:35-39; 참조 히 11장). 

이 본문은 초림[십자가]-심판[성소 정결]-재림의 시간 구도를 암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구도는 다니엘서를 통해서 구체적으로 확인된다(다니엘 9장; 8장; 7장). 다시 말하면, 레위기의 속죄 표상을 통해서 히브리서와 다니엘서 그리고 요한계시록을 통합적으로 이해해야 속죄의 포괄적 국면을 이해할 수 있다.
히브리서의 저자는 마지막으로 그의 긴 신학적 논증(1-10장)의 결론부에서 이렇게 끝맺음한다. 이런 긴 문맥에 비추어 다음 구절을 이해해야 한다.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그 후에 자기 원수들로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히 10:12-13).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히 10:19-22).

그러나 히브리서는 이런 십자가의 구원의 확실한 토대를 강조하면서도 구원에서 떨어질 가능성에 대해서도 엄중한 경고음을 여기저기서 울린다(히 2:1-3; 히 4:1-2; 히 6:1-6; 히 12:15-17)

그리고 다음 경고는 의미가 깊다.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소멸할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 세 증인을 인하여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하물며 하나님 아들을 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의 당연히 받을 형벌이 얼마나 더 중하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하시고 또 다시 주께서 그의 백성을 심판하리라 말씀하신 것을 우리가 아노니”(히 10:26-30). 또 다시 재림 전에 있을 심판을 암시한다.

그러나 그는 경고와 함께 위로도 아끼지 않는다.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까지는 대항치 아니하고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punish, discipline)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였으니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또 우리 육체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늘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여 살려 하지 않겠느냐 저희는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케 하시느니라”(히 12:4-10).                                                         


-임봉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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