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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 재림 전 심판, 예언의 신에 관한 질문과 답변

3. 엘렌 화잇이 하나님께 받은 다양한 기별들은 어떻게 발전적으로 주어지고 이해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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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렌 화잇의 봉사와 관련하여 가장 논란이 되는 이슈 가운데 하나는 엘렌 화잇이 재림교회의 교리 발전에 어떻게 개입하고 영향을 주었는지에 관한 문제일 것이다. 많은 이들은 그녀의 이상들이 재림교회의 교리들의 기원이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이런 교리들이 재림교회 내에서 역사적으로 어떻게 발전되었는지를 간단하게만 살펴보아도 다른 양상이 드러난다. 재림교회의 선구자들은 주로 성경연구를 바탕으로 독특한 교리들을 받아들였고, 초기 몇 년 동안 엘렌 화잇의 영향은 그녀의 이상을 통해 이런 연구로 얻은 교리들을 승인하고 더 분명하게 밝히는 데 제한돼 있었다. 사실상 그녀가 이런 교리적 신념들을 창시한 적은 없었다.

다시 말하면, 어떤 기별이 진공상태에 갑자기 떨어진 것이 아니라 성경연구나 특정한 역사적 상황을 거치면서 이미 논의 중인 이슈에 대하여 더 밝은 빛을 주거나 기존의 발견을 승인하거나 잘못된 정보를 교정하는 방식으로 주어졌고, 이미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진 빛에 오류가 있어서 수정하는 방식으로 주어진 것은 아니었다. 상황이 준비되었을 때 이미 주어진 기별에 더 발전적으로 추가적인 빛이 더해졌다는 말이다.

그리스도의 재림. 재림교회(Adventists)는 그리스도의 재림, 곧 천년기로 이어질 임박하고 가시적이고 실재적인 재림에 대한 그들의 신앙(참조 요 14:1-3; 살전 4:13-18; 계 19:11-20:6)에서 그들의 명칭을 취했다. 재림교인들이 1000년 전 재림 종말론을 믿는 유일한 그리스도인들은 아니었고, 사실 엘렌 화잇의 시대 오래 전에도 재림에 대한 이런 이해를 갖고 있는 사람이 많이 있었다. 그녀 자신도 어린 소녀 시절 그녀의 가족들과 함께, 윌리엄 밀러와 초기의 재림교회 설교자들의 강의를 들으면서 이런 교리를 배웠던 것이다. 그 후 이어지는 기간 동안 그녀가 끼친 영향은 대부분 재림교인들에게 이 교리를 재확인하고 그리스도의 재림을 준비하도록 그들을 초청한 것이었다.

제칠일 안식일의 준수. 안식일 교리에 대한 지식은 1844년 제칠일침례교인이었던 레이첼 오우크스(Rachel Oakes, 후에는 프레스턴으로 불림)에 의해 뉴햄프셔주 워싱턴의 재림교인들에게 소개되었다. 이 안식일 교리는 19세기에 새롭게 발견된 것이 아니라, 기독교가 시작된 이래 그리스도인들 및 17세기 이래 제칠일침례교인들에 의해 준수되어 왔다. 1845년 초에 뉴햄프셔주 워싱턴 지역의 두 목사, 토마스 프레블(Thomas Preble)과 프레더릭 휠러(Frederick Wheeler)가 이 교리를 받아들이고 그들의 견해를 전파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하여, 그것은 후에 제임스 화잇 및 엘렌 화잇과 함께 재림교회의 세 창설자 가운데 한 사람이 된 조셉 베이츠의 관심을 끌기에 이르렀다. 베이츠가 1846년에 안식일 교리를 갖고 처음 엘렌 화잇에게 접근했을 때는 그녀의 첫 반응은 부정적이었다. 그녀는 이에 대해 후에 이렇게 썼다. “나는 그것의 중요성을 느끼지 않아, 그가 다른 아홉 계명보다 넷째 계명에 더 집착하는 잘못을 범하고 있다고 생각했다.”(자서전, 95). 1846년 8월 베이츠는 <제칠일 안식일, 영원한 표징(Seventh-day Sabbath, a Perpetual Sign)>이라는 그의 첫 소책자를 출판하여, 그 책자를 제임스 화잇과 엘렌 화잇에게 전달하였다. 그때 이들은 어떤 이상을 받아서가 아니라 그 책에 제시된 성경적 증거를 보고 이 교리를 받아들이기로 결심했다(참조 교회증언 제1권, 75). 1874년에 그녀는 존 러프버러(John Loughborough)에게 보낸 한 편지에서 이렇게 회고했다. “저는 안식일에 관한 어떤 계시도 보기 전에 이미 안식일 문제에 관한 진리를 믿고 있었습니다. 제가 [이상 가운데서] 안식일 교리의 중요성을 본 것은 제가 이미 안식일을 지키기 시작한 지 몇 달 후였습니다.”(서신 2, 1874; 8MR 238).

안식일 준수 시작 시간에 대해서도 이와 유사한 과정이 있었으며, 사실 그 이슈도 안식일 준수 재림신자들(Sabbatarian Adventists) 가운데서 1855년까지도 해결되지 않았다. 안식일 시작 시간에 대하여 네 가지 견해가 1840년대 말과 1850년 초까지 그들 가운데 공존하고 있었다. (1) 토요일 아침 동틀 때, (2) 금요일 자정(“법적 시간”), (3) 금요일 오후 6:00시(“적도 시간”). 이것은 적도에서는 해가 아침 6시에 떠서 오후 6시에 지는 것을 알고 있던 조셉 베이츠가 지지한 견해였다. (4) 금요일 해질 때(유대인들과 제칠일침례교회의 입장).

이리하여 J. N. 앤드루스에게 이 문제를 성경적으로 연구하여 1855년 11월에 베틀크리크에서 있었던 한 회의에서 발표할 보고서를 쓰도록 위임했다. 성경적 증거에 기초하여 앤드루스는 안식일을 시작하는 적합한 시간이 금요일 해질 때라고 결론지었다(RH, Dec. 4, 1855). 이 회의의 참석자들은 성경연구를 통한 앤드루스의 결론을 받아들였지만, 처음에 베이츠는 “적도 시간”을 고집하며 합의를 지연시켰고 베이츠 편에 섰던 엘렌 화잇도 그렇게 했다. 그러나 3일 후 “그 회의가 끝나갈 무렵”에 가진 기도회 동안에 엘렌 화잇은 자신의 입장을 교정해 주는 계시를 받고 곧바로 앤드루스의 견해를 다른 신자들에게 전달했다(A. L. White, Messenger to the Remnant, 35, 36; 교회증언 제1권, 116; 1Bio 323, 324). 그 후 계속하여 엘렌 화잇은 안식일 교리와 그것의 신학적 및 영적 의미를 강하게 지지했다. 그녀는 또한 안식일 준수에 관한 수많은 권면을 주었다.

그리스도의 하늘 성소 봉사. 밀러주의자들은 1844년 10월 대실망 후 그들의 영적 경험 및 그리스도가 1844년에 올 것이라고 믿도록 그들을 이끌었던 다니엘서 예언들의 의미를 이해하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적은 무리만이 그들이 내놓은 예언적 시간 계산은 옳았지만 그 예언된 사건이 무엇인지는 잘못 알았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처음에 하이람 에드슨, O. R. L. 크로지어, 프레더릭 한이 주도한 몇 개월간의 성경연구를 통해 적은 무리의 밀러주의 재림신자들은 구약의 성소 봉사에 나타난 두 가지 국면의 봉사가 승천 후에 하늘 성소에서 수행되는 그리스도의 봉사의 모형이며, 따라서 1844년 10월에 그리스도가 그분의 봉사의 새로운 국면을 시작했다고 결론짓게 되었다. 에드슨, 크로지어, 한은 1845-46년 겨울 동안에 <데이 돈(Day-Dawn)>(Canadaigua, New York)에 그들의 발견들을 출판했고, 1846년 <데이 스타(Day-Star)>(Cincinnati, Ohio) 2월 7일 특별호에  다시 실었다. 이 주제에 관해 엘렌 화잇이 기록한 최초의 진술은 에드슨, 크로지어, 한의 결론이 출판된 지 1년 후에 나왔다. 그녀는 1847년 4월 24일 일라이 커티스(Eli Curtis)에게 보낸 한 편지에서 이렇게 썼다.

“주님께서 1년 남짓 전에 나에게 이상 가운데서, 크로지어 형제가 성소 정결 등에 관하여 참된 빛을 갖고 있으며, 따라서 그 형제가 <데이 스타> 1846년 2월 7일자에서 우리에게 준 그 견해를 기록하는 것이 그분의 뜻임을 보여 주셨다. 나는 주님께로부터 그 특별호 기사를 모든 성도들에게 추천하는 권한을 위임받았음을 충분히 느꼈다.”(WLF 12). 이 부분에서도 역시 그녀의 역할은 그 교리를 창시한 것이 아니라, 이상을 통해 형제들의 연구 결과를 전체적으로 확인하고 승인하는 것이었다. 훗날 이 교리가 어떤 재림교회 목사들에게 제대로 이해되지 않은 것처럼 보였을 때 그녀는 재림운동 당시의 선구자들이 쓴 이 주제에 관한 기사들을 읽으라고 교인들을 거듭 촉구했다(서신 99, 1905; CW 26).

1983년에 당시 엘렌 화잇 유산관리 위원회 부총무였던 폴 A. 고든(Paul A. Gordon)은 1846-1905년에 출판된 성소 교리와 관련된 400개 이상의 기사들을 찾아 모았다. 그가 만든 이 선집이 바로 1009쪽으로 된 <성소, 다니엘 8:14, 심판, 2,300주야, 1일-1년 원칙, 속죄와 관련된 선구자들의 기사들(Pioneer Articles on the Sanctuary, Daniel 8:14, the Judgment, 2,300 Days, Year-Day Principle, [and the] Atonement)>이다. 엘렌 화잇이 1845-1851년에 하늘 성소 주제에 관한 계시를 11개 받았지만, 그녀는 성경을 통해 성소 교리를 설명한 선구자들이 기록한 그 기사들을 교인들에게 시종일관 언급했다. 이 기사들은 그들의 견해를 뒷받침하기 위해서 그녀의 계시나 글을 이용한 적이 없었다.

요한계시록 14장의 세 천사 기별. 요한계시록 14장에서 세 천사가 선포하는 기별들은 재림교회의 자기 이해와 사명의 토대를 이룬다. 첫째 기별에서 천사는 영원한 복음과 모든 민족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하실 시간을 선포한다(6, 7절). 둘째 기별은 바벨론의 몰락을 선포하고(8절) 셋째 천사의 기별은 짐승의 표에 대하여 경고한다(9-11절). 이 기별들에 대한 언급은 밀러주의 운동 기간에 시작되었다. 윌리엄 밀러와 그의 동료들은 첫째 천사의 기별의 이미지를 사용하여, 하나님의 심판하실 시간이 당도했고 그리스도가 곧 재림하실 것이라고 전파했다.

찰스 피치(Charles Fitch)가 1843년 7월 26일에 처음으로 둘째 천사의 기별을 전한 것으로 보인다. 바벨론의 몰락을 말하는 이 기별은 많은 신자가 믿고 있었지만, 밀러주의 설교자들에겐 인기를 끈 적이 거의 없었다. 앞서 이미 개신교도들은 로마가톨릭교회를 영적 바벨론으로 보고 있었다. 그러나 피치는 영역을 확대하여, 임박한 재림의 교리를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당시 개신교인들도 거기에 포함시켰다. 재림을 위해 예언되었다고 생각된 시간(1844년)이 아직 몇 년 뒤에 있었던 동안에는 개신교단들은 대부분 밀러 운동을 잘 받아들이는 편이었다. 그러나 예언된 시간이 임박해 오면서 그것의 급진적인 기별을 더 이상 무시할 수 없게 되자 많은 교회들이 밀러주의 운동에 가담한 교인들을 괴롭히고 결국 쫓아내기 시작했다. 이렇게 불어나는 적개심에 대응하기 위해 피치가 설교하기 시작한 것이다. 조셉 베이츠는 안식일 및 성소 교리와 함께 이 세 천사의 기별들을 처음으로 구체화하고 통합한 안식일 준수 재림교인이었다. 1846-1848년에 출판된 그의 소책자들에서 그는 안식일 준수가 하나님의 인이며 일요일 준수는 짐승의 표라고 주장했다. 후에 제임스 화잇이 <현대진리(Present Truth)>(1850년 4월)에서 비슷한 결론들을 출판했다. 이 기간 동안 엘렌 화잇은 세 천사의 기별에 대해서는 거의 쓰지 않았고, 따라서 그녀의 역할은 대부분 다른 강사들이나 저자들이 내놓은 내용들을 승인하는 데 제한되었지만, 한 가지 예외로 그녀가 1848년 12월에 하나님의 인에 관한 이상을 받아 당시 그 주제에 관한 베이츠의 이해를 상당부분 강화해 주었다.

악인의 조건적 불멸과 멸절. 감리교회 목사였던 조지 스토스(George Storrs, 1796-1879)는  1842년에 밀러주의 설교자가 된 자로, 처음으로 밀러주의 운동에서 죽음을 인간 존재의 무의식적 상태로 주장했다. 아마도 스토스의 사상이 유니스 하몬에게 영향을 주어, 그녀가 당시 15세였던 자신의 딸 엘렌과 그 기별을 나눴을 것이다. 엘렌이 처음에 보인 반응은 강한 부정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성경적 증거를 주의깊이 연구한 후 그것을 받아들였다(교회증언 제1권, 39, 40). 후에 그녀는 조건적 불멸을 말하는 스토스의 “영혼 수면설”을 강하게 옹호했으며, 그것을 재림교회의 여섯 기둥교리 가운데 하나로 간주하였다(Ms 13, 1889; CW 30, 31). 그러나 그 교리를 전파하는 일에서 그녀의 역할은 대부분 스토스의 견해를 승인하는 것이었고 그녀는 어떠한 “새로운 토대”도 파지 않았다.

영적 은사의 교리. 재림교회는 고린도전서 12장과 에베소서 4:11-13에 언급된 성령의 은사들이 재림하실 때까지 성도들을 온전케 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기능을 해야 한다고 믿는다. 초기 교회에서 그것들이 사도들의 사역을 확인하고 아직 어린 교회의 청중들을 지도하는 데 필요했던 것처럼, 재림교회도 오늘날 이런 은사들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재림교회는 요한계시록 12:17과 19:10을 근거로, 예언의 선물이 마지막 시대 하나님의 남은 백성을 판별하는 표라고 주장한다. 그들이 믿는 이 선물이 엘렌 화잇의 삶과 봉사를 통해 나타났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이런 교리를 채용한 것이 엘렌 화잇의 봉사를 확증하기 위함이었는지와 관련된 질문이 제기될 수 있다. <영적 선물(Spiritual Gifts, 1858)> 제1권의 서문에서 R. F. 코트렐(R. F. Cottrell)은 엘렌 화잇에게 나타난 예언의 선물에 관한 교회의 입장이 되어 왔던 내용의 골자를 말했다. 그는 유일한 판별 기준으로 성경의 유일무이한 위치를 인정했고, 따라서 예언의 은사를 가졌다고 말하는 모든 주장을 성경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녀는 다양한 성경 본문의 뒷받침을 받아, 영적 은사들이 기독교회에서도 예수님의 재림 때까지, 특히 마지막 때에 계속 나타날 것임을 성경 자체가 지적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하여 재림교인들은 엘렌 화잇의 봉사와 기록들이 참된 성령의 은사로 간주되지만 그녀의 권위는 성경 다음으로 여겨진다고 주장해 왔다. 엘렌 화잇이 믿은, 그녀의 글과 성경의 관계를 말하는 가장 분명한 최초기의 진술 가운데 하나는 다음과 같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들의 믿음과 행위의 규범으로 추천하는 바이다. 그 말씀으로 우리는 심판을 받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그 말씀 안에서 ‘마지막 때’에 이상들[여기서는 그녀 자신의 봉사를 가리킴]을 주시기로 약속하셨다. 그것[이상]은 새로 주어진 믿음의 규범이 아니라 당신의 백성들을 위로하고 성경의 진리에서 빗나간 자들을 교정하기 위해 주어진다.”(초기문집, 78).

1846년 11월-1847년 가을에 조셉 베이츠, 제임스 화잇, 엘렌 화잇, 하이람 에드슨 등 몇몇 안식일 준수 재림신자 선구자들은 정규적으로 모임을 갖고 재림교회의 신앙적 신념이 될 특별한 교리들을 구체화하였다. 이 모임을 갖는 동안 그들은 성경을 연구하고 기도하고 때로 금식하기도 했다. 이 모임을 이끌었던 선구자는 주로 제임스 화잇과 조셉 베이츠였다. 엘렌 화잇도 참석했지만 그 논의에 그녀가 참석하여 영향을 준 것은 제한적이었다. 1904년에 그녀는 이런 회합을 갖던 동안에 겪은 경험을 회고했다. “이 기간 내내 나는 우리 형제들의 주장을 이해할 수 없었다. 말하자면, 내 마음은 꼭 닫혀 있었고 우리가 연구하고 있던 성경 말씀의 의미를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이것이 바로 내 생애에서 가장 큰 슬픔 가운데 하나였다.”(가려 뽑은 기별 제1권, 207). 그러나 그녀는 계속하여, 때때로 형제들이 성경을 연구하다가 교착상태에 빠지면 그들이 도달한 본문에 대한 이해를 승인하거나 어떤 해석에 실수가 있는지를 지적해 주는 이상을 받고자 했다. “우리 신앙의 모든 중요한 요점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일치한다는 사실이 밝혀질 때까지 나의 마음 상태는 언제나 어둠 가운데 있었다. 형제들은 계시가 없이는 내가 이런 사실들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저들은 내가 받은 계시들을 하늘이 직접 주신 빛으로 받아들였다.”(위의 책). 말하자면 그녀의 이상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 때는 바로 이런 모임에 참석한 자들이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을 때였다. 그런 역할은 지도하고 승인하는 데 제한되어 있었고, 새로운 교리의 창시를 포함하진 않았다.




-Denis Fort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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