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림마을

매일의 양식

2018년 2월 22일 목요일

장년 기도력

기도의 응답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칠십 이레로 기한을 정하였나니”(단 9:24)

다니엘의 기도는 즉시 응답을 받았습니다. 그의 기도는 역사상 가장 빨리 응답을 받은 기도 중 하나입니다. 왜냐하면 그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여호와께서 가브리엘에게 응답 명령을 내리셨기 때문입니다. 이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다니엘에게 나아온 가브리엘은 그에게 “그 이상을 깨달을지니라”(단 9:23)라고 하였습니다. ‘그 이상’은 무슨 이상입니까? 말할 것도 없이 ‘주야에 관한 이상’입니다. 다니엘이 유대 백성과 예루살렘 성의 운명에 관한 기간이라고 생각하고 기절하는 바람에 설명이 중단되었던 바로 그 2,300주야에 관한 이상입니다. 예레미야의 칠십 년 예언이 끝나 가고 있음을 자각한 다니엘이 그렇게 간절히 기도한 것은 어쩌면 유대 백성과 예루살렘의 운명이 2,300주야가 아니라 예레미야의 예언 그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랐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여하튼 천사는 ‘그 이상’을 깨달으라고 하면서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칠십 이레로 기한을 정하였다”(25절)고 합니다.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라는 표현은 지금부터 하려는 말이 ‘유대 백성과 예루살렘 성’을 위하여 드린 다니엘의 기도에 대한 응답임을 밝혀 줍니다. “칠십 이레로 기한을 정하였다”에 나오는 ‘정하였다’는 말은 오직 여기에만 나오는 단어로 ‘잘라 냈다’(cut off)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다니엘의 간절한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2,300주야에서 70이레 즉 490년을 잘라 내어 선민으로서의 유대 백성의 운명을 밝혀 주었습니다. 이 70이레의 예언 속에 메시아의 초림, 십자가, 유대 선민의 운명 그리고 교회의 탄생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기도는 결코 허공에 흩어지는 ‘독백(monologue)’이 아닙니다. 기도는 살아 계신 하나님과 나누는 ‘대화(dialogue)’입니다. 우리가 응답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때로 우리가 드린 기도를 잊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무슨 기도를 드렸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기도, 주님께서 응답하셔도 그게 응답인지도 알 수 없는 그런 막연한 기도가 아니라 다니엘처럼 마음의 깊은 곳에 있는 가장 소중한 소원과 이야기를 주님께 드립시다.

어린이 기도력

내 하나님을 찬양하리라(2)



“주께서 물의 경계를 정하셔서 넘치지 못하게 하시고”(시편 104편 9절)


마른땅은 바닷물로 출렁이는 옷을 입히시고
하늘 저 위에 물들을 조심조심 올려놓으셨다가
우레로 꾸짖으시니 물이 도망하여
예수님 정해 놓으신 곳으로 물러났지요
다시는 물이 땅으로 넘어오지 못하게 경계를 그으시고
무지개도 보여 주시니
산은 우뚝 높아지고 골짜기는 움푹 내려갔습니다

곳곳에 퐁퐁 샘이 솟아 산 사이로 흐르니
홀짝홀짝 목을 축인 새들은 깃털을 씻고
제 집으로 돌아가며
제각각 목소리들로 합창 교향곡을 연주하는
골짜기가 됩니다
너구리도 들나귀도 산양들도 거기 깃들어
목을 축이고 살아갑니다
나무들도 제각각 색색 옷 맞춰 입고
물속 제 모습 예쁜지 비추어 봅니다
그러고도 남은 물들은 들판으로 마을로 흘러듭니다


--시편 104편을 천천히 읽고 있으면 예수님께
감사하며 찬양하는 이유를 알게 됩니다.
이렇게 자연을 아름답게 펼쳐 놓으신 예수님은
지금도 아름다운 자연을 통해 일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일하시는 자연을 함부로
망가뜨리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려면 우리가 무엇을 실천해야 할지
곰곰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더보기

더보기